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자
당신의 존재는 숨쉬는 것으로 증명되는데 숨을 쉰다면 말할 것이고
말을 한다면 물어볼 것이고 물어본다면 생각할 것이고
생각한다면 탐구할 것이고 탐구하는 것은 경험이며 경험은 곧 배움이다.
당신이 배운다면 성장할 것이고 성장한다면 원할 것이며
원한다면 찾을 것이고 찾고 나면 의문을 가질 것이고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곧 이해한다는 것이며
이해한 후에는 더 많이 알고 싶을 테니 그것은 곧 당신이 살아있다(alive)는 증거다.
- 내셔녈지오그래픽채널의 자체 광고문
박승원의 ‘아침을 여는 1분 독서’ - 제1283호 (2017/05/02)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자>
들리는 것을 듣는다고 해서
다 듣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본질을 가져와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이기주, <언품>에서)
**배움과 생각**
‘이청득심(以聽得心)’.
‘귀를 기울여 들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귀만 기울여서는
남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들리는 소리를 다 듣는다고 해서
남의 마음까지 다 얻을 수 있다면,
서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야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나와 남의 마음이 통할까요?
세 가지 유형의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로만 듣는 사람이 있고,
머리로 듣는 사람이 있으며,
가슴으로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로만 듣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합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만 인식합니다.
가까이 있으면 잘 들을 수는 있으나
속마음은 하나도 들을 수 없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들을 수 없으니
상대의 마음도 얻지 못합니다.
머리로 듣는 사람은
해석하며 들으려 합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를 해석합니다.
상대의 속마음을 판별하고 분석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뿐입니다.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가슴으로 듣는 사람은
상대를 헤아리며 들으려 합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의 이면을 헤아립니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 말의 배경을 헤아려
마음으로 같이 이해하고 느끼려 합니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상대의 마음을 얻습니다.
귀로만 들어서는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머리로 해석하며 들어서는
같은 사람의 마음만 얻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이 닫힙니다.
가슴으로 헤아리며 들어야
내 마음의 문이 열리고, 그 곳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 들어옵니다.
다시 귀를 엽니다.
해석하려는 머리는 닫습니다.
헤아리려는 가슴은 활짝 엽니다.
상대의 마음이 내게로 들어옵니다.
‘이청득심’하는 날이 됩니다.
世晃 박승원 Dream.